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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낙원을 만들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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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교토를 다녀왔습니다. 에도 막부의 문을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권력의 상징, 니조성(二条城)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사후, 이에야스는 막강한 권력을 쥔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머리를 숙이고 협조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히데요시는 그래도 그를 경계하여 척박한 변방인 에도로 영지를 옮기게 했지만, 이에야스는 굴욕과 모함 속에서도 묵묵히 칼을 갈며 인내했습니다. 마침내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천황으로부터 ‘쇼군’ 칭호를 받고 오사카성을 함락시키며 토요토미 가문의 시대를 끝냈습니다. 평생을 살얼음판과 칼끝 위에서 버텨내어 최후의 승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남긴 웅장한 니조성의 니노마루 궁전을 둘러보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마주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화가와 예술가들을 불러 지극히 화려하게 꾸며놓은 그 궁전의 테마가 다름 아닌 불교적 이상향, ‘극락정토(極樂淨土)’였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피를 흘리고 마침내 천하를 발아래 두었던 권력자가 가장 원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칼과 불안이 없는 평안한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금박과 정교한 그림으로 궁전을 채웠을망정, 밤마다 자객을 두려워해 걸을 때마다 새소리가 나도록 만든 마룻바닥(우구이스바리)은 그가 결코 현실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했음을 웅변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영웅이라도 인간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낙원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일본의 역사는 이에야스가 품었던 그 지독한 갈증을 대를 이어 답습해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통해 세우려 했던 동양의 유럽국가도, 눈부신 전후 경제 발전을 통해 도달하려 했던 풍요의 경제대국도 결국 현실의 땅에는 없었습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좇아온 일본의 역사는 우리 모두에게 공허한 슬픔을 남깁니다.

사람은 에덴을 잃어버린 이후 끊임없이 제 손으로 자기만의 낙원을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권력을 쥐면 평안할 것 같고, 재물로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을 만들면 그곳이 낙원이 될 것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인간의 낙원은 그저 금칠을 한 감옥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참된 평안은 내가 세운 높은 성벽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나의 무릎을 꿇을 때 비로소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손으로 지은 헛된 낙원을 바라며 불안 속에 칼을 쥐기보다, 오늘 나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삶이기를 바랍니다. 참된 안식과 구원은 오직 예수 안에만 있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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